변비는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약물 복용이 주요한 유발 요인이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간과되기 쉽습니다. 특히 고혈압약, 진통제, 항우울제와 같이 장기적으로 복용되는 약물들은 장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만성 변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세 가지 약물군이 각각 어떻게 변비를 유발하는지, 그 유발률과 기전, 그리고 예방법까지 상세히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고혈압약 - 칼슘채널차단제의 장 운동 억제
고혈압 치료에 널리 사용되는 칼슘채널차단제(CCB)는 대표적인 변비 유발 약물입니다. 이 계열의 약물은 혈관을 이완시켜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평활근 이완 작용을 통해 장운동을 느리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장의 연동 운동이 감소하면서 대변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수분 흡수가 과도해지며 단단한 변이 형성되어 변비로 이어지는 것이죠.
대표적인 CCB 계열 약물로는 암로디핀(amlodipine), 펠로디핀(felodipine), 니페디핀(nifedipine) 등이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복용 초기부터 변비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고혈압약을 복용 중인 환자의 약 20~30%가 변비를 경험한다고 보고되며, 특히 노인층에서 유병률이 높습니다.
칼슘채널차단제 외에도 일부 이뇨제나 교감신경차단제(베타차단제)도 간접적으로 장 내 수분 조절에 영향을 미쳐 변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뇨제는 체내 수분을 줄이기 때문에 장 내 수분도 함께 줄어들고, 이로 인해 대변이 건조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고혈압약 복용 시 의사는 이런 부작용을 고려해 식이섬유 보충제, 프로바이오틱스 등의 병용요법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진통제 - 아편계 약물의 장 마비 유발
진통제 중에서도 특히 아편계(opioid) 약물은 심각한 수준의 변비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약물군입니다. 모르핀(morphine), 옥시코돈(oxycodone), 펜타닐(fentanyl), 하이드로코돈(hydrocodone) 등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통증을 차단하는 동시에 장 신경계에도 영향을 미쳐 연동운동을 억제합니다.
아편계 약물은 장의 μ-오피오이드 수용체를 자극하여 장의 긴장을 증가시키고, 연동 운동은 감소시킵니다. 동시에 수분과 전해질의 흡수를 촉진해 딱딱한 변이 장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유발합니다. 이러한 작용 기전으로 인해 아편성 변비(Opioid-Induced Constipation, OIC)라는 별도 질환명이 존재할 정도로, 의료계에서는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편계 진통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40~80%가 변비를 경험하며, 특히 만성 통증이나 암성 통증 환자에게 매우 흔한 부작용입니다. 일반적인 완하제나 식이섬유 섭취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아편계 수용체 길항제인 메틸날트렉손(methylnaltrexone), 날록세골(naloxegol) 등과 같은 특수 약물들이 개발되어 치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항우울제 - 장 운동 저하 및 항콜린성 부작용
항우울제는 중추신경계를 조절하여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을 치료하는 약물이지만, 그에 따른 항콜린성 부작용으로 인해 장운동 저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삼환계 항우울제(TCAs), 예를 들면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 이미프라민(imipramine) 등은 아세틸콜린 수용체를 억제하여 위장관 기능을 둔화시킵니다. 이로 인해 환자는 입 마름, 시야 흐림, 배뇨 곤란과 함께 변비를 겪을 수 있습니다.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 예를 들면 플루옥세틴(fluoxetine), 설트랄린(sertraline) 등은 상대적으로 항콜린성 작용이 덜하지만, 여전히 일부 환자에게서는 장 기능 저하와 변비 증상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약 15~30%가 변비를 경험하며, 복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증상이 고착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고령층 환자, 운동량이 적은 사람, 수분 섭취가 부족한 환자에게 변비 위험이 더 큽니다.
약물 복용이 불가피한 환자에게 변비는 흔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될 수 있습니다. 고혈압약, 진통제, 항우울제는 각각 다른 기전으로 장 기능에 영향을 주며, 특히 노인과 만성 질환자에게서 변비 유병률이 매우 높습니다. 변비는 약물 복용을 중단하게 하거나,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원인을 분석하고 맞춤형 예방 및 치료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물 조정과 함께 식이조절, 운동, 유산균 보충 등을 병행하여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